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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은 "농심 창업주인 신춘호 회장이 27일 오전 3시 38분 향년 92세에 별세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신춘호 회장은 최근 노환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었습니다.

 

신 회장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은 지난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에 대해 "몸이 안 좋으시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라고 언급한 바 있었습니다.

 

 

오늘은 신춘호 회장의 주요 연보 어떻게 농심을 이끌어 갔는가에 대하여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신라면과 신춘호 회장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91)은 생전 ‘작명의 달인’으로도 이름을 날렸습니다.

 

농심의 많은 히트 상품이 신춘호 회장이 지은 이름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1986년 출시된 농심의 대표 상품 ‘신라면’은 고 신춘호 회장이 본인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시장에선 ‘매운(辛) 라면’으로 통했지만, 본인의 성을 따서 만든 제품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태생부터 신라면은 ‘회장님 라면’이었던 것입니다.

 

“사나이 울리는 농심 신라면”이라는 오래된 광고 카피도 고인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신라면의 전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고 합니다.

 

 

당시 제품 출시에 앞서 열린 시식회에서 “매운맛이 너무 강해 잘 팔리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신 회장이 “독특한 매운맛으로 승부하자”라고 개발팀을 격려했고 제품 출시를 밀어붙였다고 했으며, 당시 신라면 개발에 참여했던 한 연구원이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술회한 당시 풍경입니다.

 

작명가 신춘호 회장과 새우깡

 

손이가요 손이 가 새우깡이 손이 가요라는 CM송 아시나요?

 

1971년 출시된 ‘새우깡’은 신춘호 회장이 우연히 딸의 노래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신격호 회장은 당시 어린 딸(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부인 신윤경)이 ‘아리랑’을 부를 때 ‘아리깡~ 쓰리 깡~’이라고 부르는 것에 영감을 얻어 아이들도 말하기 쉬운 ‘새우깡’이라고 작명했습니다.

 

1971년 12월 새우깡이 출시될 당시 농심은 판매 부진과 미수금 누적 등으로 회사는 매각 위기까지 몰렸었지만 이때 ‘소고기 라면’과 함께 신제품으로 등장한 새우깡이 소비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농심은 다시 회사를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입에 착 붙는 너구리(1982년),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 등도 모두 그가 직접 만든 이름입니다.

 

신 회장의 마지막 작명은 지난해 10월에 출시한 옥수수깡이 됐습니다.

 

농부의 마음 (농심)

 

신춘호 회장은 1962년 일본 롯데 이사를 지내며 형 신격호 총괄회장을 도왔지만 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1965년 롯데 공업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라면 사업을 하겠다는 신춘호 회장을 신격호 총괄회장이 크게 반대하면서 둘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급기야 신격호 총괄회장은 "감히 롯데라는 사명을 쓰냐"며 동생이 롯데 브랜드를 쓰지 못하도록 했고, 신춘호 회장은 1978년 사명을 '농부의 마음'이라는 뜻인 농심으로 바꿨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신춘호 회장은 형의 위세에 눌린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지금은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롯데는 경영권 싸움을 하면서 드러난 그룹 지배구조로 '일본 기업'이라는 오명을 받는 데 이어 비자금과 탈세 수사로 벼랑 끝에 몰렸었고, 이와 달리 농심은 국내 1등을 넘어 글로벌 라면 회사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대표 제품인 신라면은 지난해 기준으로 누적 매출이 10조 원을 넘어섰고, 이제는 세계 100개국에서 팔리는 인기 제품이 되었고. 경영권 싸움을 하는 롯데와는 달리 일찌감치 장자 우선 원칙이라는 경영권 승계도 마련해 그룹 내부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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